학생 “택시비 아끼려 킥보드 귀가”
헬멧 없이 질주… 큰 사고 날수도
지난달 음주적발 1년새 70% 늘어
경찰 “사고 위험 커 단속 강화”
18일 오전 1시경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 앞 사거리.
술 냄새를 풍기는 젊은 남성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자 곳곳에서 놀란 행인들이 몸을 피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인근 일식당 직원 서모 씨(27)는 “지하철 막차가 끊기는 시간부터 도로 여기저기서 음주 킥보드가 튀어나온다. 사고가 날까 봐 식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풀 꺾이고 각종 대면행사가 재개되면서 음주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운전해 귀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 킥보드 음주운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면행사 재개-택시비 인상으로 음주 킥보드 늘어
이날 홍익대 인근에선 술을 마신 채 헬멧도 쓰지 않고 인도나 차도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전동킥보드 탑승을 준비하던 대학생 박모 씨(23)는 “서대문구 창천동에 사는데 1km 거리라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만취 상태만 아니면 자주 킥보드를 타고 집에 간다”고 했다.
개강 후 대면수업이 진행되는 대학가에서 특히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갖던 대학생 등이 킥보드 음주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7일 오전 2시경에는 서울 성북구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술을 마신 채 전동킥보드를 타던 학생이 쓰려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됐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대학생은 “사고 현장을 사진 찍는 중에도 술 마신 남학생 2명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지나갔다”고 했다.
지난해 말 택시 할증 시간과 할증률이 조정된 데 이어 지난달 택시 요금이 인상되면서 킥보드 음주운전은 한층 늘었다고 한다. 서울 광진경찰서의 한 파출소 팀장은 “택시비 인상 직후부터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2배가량으로 늘었다. 최근 주말에는 하루 3, 4건씩 킥보드 음주운전을 적발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2월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수단(PM)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274건으로 전년 동월(164건) 대비 70%가량 늘었다.
● 단속 어렵고 처벌 수위 낮아
단속 건수가 늘고는 있지만 실제로 킥보드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학생 A 씨(26)는 “술 마시고 자주 킥보드를 타는데 단속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단속하려 하면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골목 등으로 도망가면 그만”이라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순찰차로는 킥보드 운전자를 따라가기 어려워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단속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며 “킥보드 음주운전을 발견하고 갑자기 순찰차를 세울 경우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고 했다.
만에 하나 적발되더라도 일반 차량에 비하면 음주운전 처벌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현행법에 따르면 혈중알코올농도 0.03∼0.08%로 PM을 운전하다 적발될 경우 1년 이내 운전면허 정지와 범칙금 10만 원 처분이 내려진다. 반면 일반 차량의 경우 혈중알코올농도 0.03∼0.08%로 운전하다 적발되면 1년 이내 운전면허 정지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원칙적으로는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전동킥보드를 빌릴 수 있지만 무면허라도 본인 인증만 거치면 빌릴 수 있는 대여업체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인천에선 술을 마신 채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몰다가 시내버스를 들이받은 여고생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킥보드 음주운전의 위험성에 대한 적극적 홍보와 단속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동킥보드 음주운전을 일반 차량 음주운전에 비해 가볍게 생각할 수 있지만 온몸이 외부에 노출돼 있으니 더 위험한 측면도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홍보와 특별단속을 강화해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대면행사 재개 등으로 킥보드 음주운전이 늘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단속 강도를 한층 높일 것”이라고 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